하루는 지나갑니다.아침에 붙잡고 있던 생각도
점심쯤 삼켰던 말도
저녁 무렵 잠깐 멈춰 섰던 마음도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흩어집니다.분명히 내 안에 있었는데
어느새 설명하기 어려워진 것들그런 마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온순간은
하루에 자리를 하나 마련합니다.긴 기록이 아니어도 됩니다.
오늘 마음이 오래 머문 장면 하나
그 장면에 가까운 한 문장그 한 줄이
오늘의 카드가 됩니다.
카드는
기록을 조금 다르게 느끼게 합니다.그냥 저장된 텍스트가 아니라
오늘이 하나의 작은 물건처럼 남습니다.날짜가 있고
여백이 있고
내가 남긴 문장이 가운데 놓입니다.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가 아니라
먼저 나에게 돌아오기 위한 작은 오브제온순간의 하루 카드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문장이 카드가 되면
하루는 조금 덜 쉽게 사라집니다.내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 앞에 오래 머물렀는지가 남고
얼마나 잘 보냈는지보다
어떤 마음을 지나왔는지가 남습니다.카드는
하루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의 한 줄이 사라지지 않도록
조용히 붙잡아 둡니다.그리고 그 카드는
나에게만 머뭅니다.
며칠의 카드가 모이면
이번 주의 챕터가 열립니다.반복해서 등장한 말
자꾸 돌아온 장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감각처음에는 흩어진 한 줄처럼 보였던 것들이
나란히 놓이면
조금씩 하나의 흐름이 됩니다.나는 이번 주에
무엇을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을 자주 지나갔는지
어떤 말 앞에서
계속 멈춰 섰는지카드들은
그 질문에 조용히 답하기 시작합니다.
챕터는
나를 해석해주는 결론이 아닙니다.다만
내가 지나온 마음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자리입니다.온순간은
당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이 남긴 문장들이
서로 가까이 놓일 수 있게 합니다.그 가까움 안에서
내가 나를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도록챕터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챕터들이 쌓이면
나의 책이 됩니다.나의 책은
잘 살아냈다는 증명서가 아닙니다.
성취를 모아둔 기록도 아니고
완벽해진 나를 보여주는 앨범도 아닙니다.나의 책은
내가 지나온 마음의 윤곽입니다.어떤 날에는 단단했고
어떤 날에는 흔들렸고
어떤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어떤 날에는 아주 작은 한 줄만 남겼다는 것그 모든 것이
나의 시간 안에 있었다는 조용한 흔적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나간 나를 너무 빨리 지워버립니다.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마음
이제는 끝난 것으로 여긴 장면
별일 아니었다고 덮어둔 말하지만 어떤 것은
지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오늘의 한 줄이 카드가 되고
카드들이 챕터가 되고
챕터들이 나의 책이 되는 일은내가 지나온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나의 여정 안에 자리 잡는 일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떤 문장은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습니다.처음에는 아팠던 말이
내가 지나온 길의 흔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끌고 다니지 않는 자리에 놓이는 것온순간은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습니다.카드는 먼저 나에게 머물고
챕터는 천천히 열리고
나의 책은 조용히 두꺼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