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의 춤, 열매의 침묵: 보여지는 나는 존재하는 나로 (The Dance of Leaves, The Silence of Fruit: From Performing to being)


[막11:13-14]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Mk 11:13-14, NIV]

13 Seeing in the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find out if it had any fruit. When he reached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because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14 Then he said to the tree, “May no one ever eat fruit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him say it.

아침의 볕이 방에 비춰지는 시간, 성경을 펴두고 한참을 머뭇거린다. 마가복음 11장, 예루살렘 근교의 무화과나무 앞이다.

잎이 무성하여 멀리서도 눈길을 끌던 나무. 예수님께서는 시장기를 느끼고 그 나무에 다가가셨다. 잎이 있다면 으레 열매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은 나무가 잎사귀로 보낸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가지를 들추셨을 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잎사귀들의 요란한 춤만 있을 뿐.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나무를 향한 저주가 가혹하다 느꼈다. 하지만 오늘, 이 장면은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예수님이 꾸짖으신 것은 ‘열매 없음’ 그 자체보다, 열매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잎을 흔들어댄 ‘기만’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당연한 것처럼 만들어 온 내 삶의 잎사귀들을 세어본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다듬어온 평판, 그럴듯해 보이는 직함, 짐짓 성숙한 어른인 척하는 태도, 습관처럼 내뱉는 신앙의 언어들…

멀리서 보면 내 인생은 제법 울창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이 오늘 내 잎사귀를 들추시며 “그래, 여기 생명을 살리는 진짜 열매가 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내밀 수 있을까.

겉으로는 번듯한 성전이었으나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처럼, 나 또한 ‘보여지는 나(Persona)’를 치장하느라 ‘존재하는 나(Being)’를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닌지…

나무를 말라죽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파괴가 아니라 ‘멈춤’이었다. 거짓된 생명력을 뽐내느라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차라리 그 위선을 죽여 진짜 뿌리로 돌아오라는 뼈아픈 사랑이다. 잎사귀만 무성한 삶은 결국, 나 자신도 속이고 타인에게도 아무런 양식을 주지 못하기에.

그래서 나는 오늘, 화려한 잎사귀 하나를 더 다는 대신, 나의 초라한 빈 가지를 기록하기로 한다. 내가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지, 나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드시는 은혜가 얼마나 질긴지.

온순간이라는 이 공간에 남기고 싶은 것은 성공의 트로피가 아니다. 나의 부서짐과 회복, 그 날 것의 기록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나의 훌륭함이 아니라 나의 솔직함에 기대어 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잎사귀의 소란함을 잠재우고, 고요히 내 안의 빈곤함을 직면한다. 이 정직한 가난함 위에서야 비로소, 진짜 열매는 맺히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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